총 게시물 35건, 최근 0 건
   

일천번제에 대하여 - 요청글

글쓴이 : 새롬 날짜 : 2015-05-04 (월) 11:50 조회 : 614

요청에 의해 주보에 실었던 일천번제에 대한 글을 올려드립니다.

매일매일 우리의 삶이 주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길....


믿

일천 번제에 대하여

 

 

 

일천번제헌금은 글자그대로 일천번의 헌금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일천번제 헌금을 하고 있는 교회들 중에 비성서적인 목적과 방법으로 행하고 있어서 문제점들이 많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먼저 일천번제 헌금은 솔로몬이 왕으로 직위하면서 드린 제사와 관련이 있다.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왕상3:4)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대하1:6)

사실 솔로몬왕의 일천번제는 일천()동안 드린 일천(:number)의 제사가 아니다. 일천 개(:piece)의 제물로 드린 번제(燔祭: brunt offering: 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이다. 이것이 하루에 다 드린 것인지 며칠이나 몇 주에 나누어서 드린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

 

솔로몬은 왕이 되면서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렸고, 이 일 후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뛰어난 지혜와 지식 뿐 아니라 최고의 부귀영화까지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

이것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우리도 일천번제를 드리자고 한다면,

그것은 기복주의적 신앙의 발상일 뿐이다. 또한 솔로몬처럼 한 번에 일천번제를 드릴 수 없으니 마치 할부금처럼 천 번으로 나누어 드리자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아는 바와같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노력하거나 대단한 일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내려 주시는 것이다(2: 8-9).

사실 솔로몬 왕은 이후로도 성전을 봉헌하면서 십사만 이천 번제’(왕상8:63-66, 대하7:5-10)를 드렸고, 그의 아버지 다윗 왕도 이미 삼천 번제를 드린 적이 있다(대상29:21).

 

솔로몬 왕과 다윗 왕이 일천 번제 또는 삼천 번제를 드린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나 커서 오로지 그 은혜에 감사하는 목적으로 드린 것이지,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드린 것이 아니었다. 즉 복을 받았기 때문에(because)’ 드린 것이지, 복을 받기 위해서(for)’ 드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일천번제도 이미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드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와 같이 동물을 제물로 태우는 번제를 드리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단번에 끝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번제(brunt offering: 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를 드리려는 것인가?

사망의 죄로부터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이제 날마다 육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의 자녀로서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말씀과 기도로 우리의 정욕과 탐심, 미움, 죄를 십자가에 못 박는 회개와 내려놓음의 예배가 바로 번제의 성격인 것이다.(2:20; 5:24)

 

따라서 일천번제의 의미는 일천 번의 헌금을 드리는 그 행위와 숫자에 있지 않다.

일천번제 헌금은 날마다 말씀으로 우리의 죄를 깨닫고, 기도로 모든 정욕과 죄를 십자가에 태우는 마음으로 예배하며 드리는 매일 매일의 감사 제물이 되어야 한다.

일천 번의 제물()이 아니라, 일천의 번제(자신을 태워 주님께 드림)가 되어야 한다.